윈튼 마살리스는 출중한 트럼펫 연주자이다.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면서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다. 스탠다드 타임 3권은 그의 많은 음반 중에서 걸작이라고 할 수도 없고 대표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스탠다드 타임 시리즈가 그의 인기작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2권이 주로 추천되고 있지 3권은 그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치열한 연주도 아니고, 혁명적인 발상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충격적인 재해석도 아니다. 어쩌면, '토요일 밤'을 위한 음악. 무드 잡는 음악, 까페 뮤직 정도로 평가 절하될 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아티스트가 쉬는 겸, 몸도 풀 겸 해서 내놓은 듣한 음반. 키스 자렛의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음반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이 음반은 각별하다. 멋도 모르고 재즈를 듣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등학교 3년 동안을 회상하면 공부한 기억 밖에 없다. 아침 6시40분까지 등교해서 이른바 '마이너스1교시'로 하루를 시작했고, 정규 수업 시간 마치고 '타율학습' 하고 나면, 똘똘한 아이들은 모여서 100분짜리 특강수업도 듣어야 했고, 이어지는 '야자'는 자정이 되어야 끝났다. 토요일 오후에도 학교에 남고, 일요일도 학교를 가고 추석도 당일 빼곤 학교를 가야했던 그 시절에 소중한 위안거리가 바로 음악이었다. 토요일 6시쯤 학교에서 풀려나면 대구 동성로에, 지금은 없어진 타워 레코드로 가서 음반 구경하는 것이 가끔 있는 낙이었다. 그 시절 구입한 몇 안되는 음반 중에 하나가 이것이고 휴대용 CDP에 끼워서 줄기차게 들었던 것이 바로 이 음반이다. 가끔 친구들이 듣던 '김정민 2집'이나 '머라이어 캐리 3집'도 빌려 들었지만... 그 당시 호기심과 주머니 부담 때문에 재즈 컴필레이션 음반도 몇개 샀지만 거의 다 남들 줘버린 것 같다. 요즘 컴필레이션 보다 훨씬 비쌌지만 컴필레이션은 아무래도 소장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다. 요새처럼,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고 명반 이야기도 주워 들을 줄 알았다면 이 음반을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혹하는 마음에 마일즈 데이비즈나 존 콜트레인의 걸작들을 샀을테지. 하지만 순수한 관심과 열정으로, 없는 주머니에서 나름대로 거금을 투자한 음반이기에, 그리고 너무나 좋아하고 자주 들었던 음반이기에 더욱 아끼게 된다. 지금도 이 음반을 듣노라면, 찌는 듯 더운 여름날의 교실... 후끈 달아오르던 운동장의 열기... 그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다. "Never Let Me Go"의 그 애절한 곡조를 결코 잊을 수 없다.
2005년 5월 29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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