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문화의 차이인가...
등산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겠느냐는 생각에 걸맞지 않게, 이 책 앞 부분의 추천사에는 이 등산 이야기가 재밌어 죽겠다는 말로 가득차 있다. '턱이 아플 정도로 낄낄거리고 하하 웃었다'느니 '책을 읽는 동안 바보처럼 낄낄거리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느니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크게 웃는지 궁금하게 하라'는둥... 다른 건 몰라도 웃기는 재미 하나는 끝내 줄 거라는 기대감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 사람이 백두대간 종주한 이야기가 하니라 미국 사람이 애팔래치아 종주한 이야기다. 웃음의 코드가 다르다 보니, 브라이슨이 쏘아대는 썰렁 개그, 말 장난이 한국 사람에게는 그리 웃기지가 않는다. 그런데다가 너무 격식있는(?) 번역 덕분에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가 얘기하고 있어. 여자 친구가 남차 친구에게 말하길 '지미, 페도필리아(pedophilia) 철자를 쓸 줄 알아?' 남자 친구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세상에 자기. 그 단어는 여덟 살짜리에게는 대단히 심한 말이야'라고 말했대." 나는 웃었다.
정말 웃긴가? 몇 번을 읽어 본 후에야, 여기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가 여덟 살짜리라는 것. 그리고 '심한'이라는 영어 단어에 아마 '어려운'이라는 뜻도 있어야 웃길 거라는 것이 이해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라고 서로를 부르는 것은 도대체 왜? 원문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걸 번역한 사람은 이 유머를 이해는 했을까? (하지만, 대화에서 구어체의 문장을 쓰려고 한 노력, 마일, 야드 등등으로 되어 있는 미국식 단위를 적절히 표준 단위로 환산해서 한국 독자들이 쉽게 알아 들을 수 있게 해준 것 등은 훌륭했다.)
이런 식으로 선뜻 와닿지 않는 유머 덕택에 재미는 좀 덜했지만, 그래도 신나는 모험에 대한 열정, 생물 다양성과 환경 보호에 대한 저자의 관심, 자연과 멀어진 현대 미국인의 삶에 대한 반성,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모습 등은 이 책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해 주었다. 책 읽고 나서 베낭 매고 도봉산 오르고 싶은 마음이 또 드는 걸 보니 잘 쓴 책임에는 분명하다. <달인 김병만의 지리산 종주 스토리>나 <김제동의 산 타기>, <베낭 매고 1박 2일> 뭐 이런 책이 나와서 이 책을 대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2008년 3월 25일에 씀
(2018년에 같은 번역자의 개역판이 나왔다.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셨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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