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산업의 시대에서 국제 특허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 분쟁에서 그 중요성은 이미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술이라는 지적재산을 특허를 통해 방어하지 않고서는 기업이 생존하기 어렵다. 한국은 특허를 많이 생산해 내는 나라입니다. PCT 국제특허출원 기준 한국은 4위 정도이며,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여러 유럽 선진국들을 앞섭니다. 인구 대비 특허 출원 건수로 따지면 세계 1위입니다.
국제 특허 출원에 있어서, 변리사의 역할이 가장 크겠지만, 한국어로 된 특허를 (주로) 영어로 번역하는 특허 번역자들의 역할도 어마어마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크게 기여하는 언성 히어로라고나 할까. 특허 번역 작업은 다른 번역 작업과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1) 기술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문장을 번역하는 일이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와 도면을 보는 능력 등이 자주 필요하다. 누구든 자신의 세부 전공 분야가 아니라면 남이 발명한 것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특허 번역사는 다른 사람의 기술적 아이디어를 이해해 보겠다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정확하게 발명자의 의도를 외국어로 옮기는 능력이 필요하다.
2) 특허라는 특수 목적 문서의 규칙에 익숙해야 한다. 특허 문서는, 같은 영어라도, 희한한 문법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제1부분'을 번역한다면 다른 문서에서는 무조건 'the first portion'이겠지만, 특허 문서에서는 'a first portion'으로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특허의 종류에 따라 문서의 형식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으며, 청구항을 기재할 때는 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다.
3) 정확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지녀야 한다. '가지다' '포함하다' 구성되다' 등의 쉬운 표현들도 특허에서는 각각의 적확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 포함 관계에 대한 표현 하나 때문에 엄청난 금액의 특허 소송에서 패할 수도 있다. (물론, 특허 번역에는 명세서 외에도, 의견서, 보정서, 심결문, 검토 보고서, 특허 법인들 간의 서신 등 여러가지 문서들이 포함된다.)
<연봉 1억! 영문 특허번역 가이드북>는 위의 2번 항목과 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문서를 다루던 번역자가 특허 번역을 시작할 때 경험하는 황당함을 줄여줄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며, 의뢰인(발명자)에 따라 요구 사항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IP번역사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거나, 특허 번역을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유용한 책입니다. 알음알음으로 알려져 있거나, 특허 법인 내에서 도제식으로 전달되는 지식들을 총괄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술 번역자를 위한 첨언: 근데, 특허 번역으로 연봉 1억 가능하냐고요? 글쎄요. 최상위 실력자들로서 상당히 많은 번역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처음 이 분야에 입문한 사람이 연봉 1억을 달성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프리랜서 기술 번역사라면 특허 번역에만 올인하지 말고, 다른 문서들도 번역하여 자신의 실력을 기르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더 유리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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