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 번역, 이럴 땐 이렇게> - 조원미 저 (2014)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주로 하는 제가 반복적으로 읽는 책입니다. 마치 테니스 백핸드 스트로크 연습을 계속 하듯이, 한국어 문장을 영어다운 문장으로 번역하기 위해 문장 표현의 잔근육을 발달시키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 서적들 중 한영 번역사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 그리 많지 않은데, 저는 그 중 이 책이 단연 가장 잘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서문에 써 놓았듯이, '나는 미국 영어를 중시하는 사람이다'를 'I am the person who considers American culture important'로 번역하면 의미가 명확하고 문법에 맞는 문장이 되지만('the'보다는 'a'를 쓰는 것이....), 교정 의뢰인은 이 문장이 'I respect Americal culture'와 같이 영어답게 rewritten 된 문장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훌륭한 영한 번역사라면 애초에 한국에서 영어로 번역할 때부터 이처럼 '영어스러운' 문장으로 번역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몇 가지 중요한 팁이 나와 있습니다.
한국어의 '명사+동사'를 '형용사+명사'로 바꿔보기. The voice is increasing. There is an increasing voice.
무생물 주어 활용하기. He behaves inappropriately. His behavior is inappropriate.
반복을 피하기 위해 대명사를 활용하기, 등등.
다양한 종류의 번역 예시가 있어, 그냥 반복해서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막상 한국인 저자가 한국어로 써 놓은 번역 의뢰문을 마주하면, 쉽게 '영어스러운'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럴 때, 제가 사용하는 '잔기술'은 한국어 문장의 여러 단어들(주어, 목적어, 전치사구, 관형어구 등)를 각각 하나씩 주어로 삼아서 영어 문장을 써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좀더 '영어스러운' 문장이 떠오릅니다.
물론 이런 테크닉들이 번역사의 능력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적절한 어휘의 선택, 원저자의 의도에 대한 명확한 이해, 다양한 문장 구성 능력, 문맥 파악 능력 등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인에게는 어색해도 영어 사용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영어 분위기가 팍팍 나는' 문장을 써내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역시 이공계 논문 특허가 예문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무리한 기대일 수 있겠으나) 한국어 원문이 '비문(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거나 다른 오류를 가지고 있거나 문장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에 이를 영어로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문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의 영한 번역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런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은 제가 써야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책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1장에 '전 세계적으로 암 발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직역하면 'Incidence of cancer development is increasing rapidly across the world'이 되고 영어식 표현으로 번역하면 'Cancer knows no borders.'된다는 예시가 있는데,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건 좀 많이 나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이런 문장을 떠올리지 못한 독자에게 약간의 충격을 주고 싶어했을 저자의 마음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논문 같은 글에서 사실 전달을 위해서는 쓸 수 없는 문장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빠르게'라는 의미도 빠져 있고.
추가 코멘트: 한영 번역은 영한 번역보다 번역 단가도 높고, 진입 장벽도 높아 경쟁도 상대적으로 덜 치열하며, 약간의 창조적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보람된 작업입니다. 특히, 이공계 논문, 보고서, 특허 분야는 번역사에게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이공계 분야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영문 수요가 높고(논문과 특허를 많이 출판해야 하니까), 대부분의 문과 출신 번역가들이(심지어 통번역대학원 출신이라 할지라도) 기본 배경 지식의 차이 때문에 이공계 문서를 다루는 것을 버거워 하기 때문에,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한영 번역에 도전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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